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5월 22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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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지난 120년 동안, 서로 다른 준비 통화의 인기는 쇠퇴하고 흘러갔고, 이는 세계 경제를 이끄는 운명의 변화를 반영합니다.

국가별로 지급을 대비해 보유한 외국환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거래되는 석유 등을 결제하는 화폐단위로서의 역할을 하는 가격설정 화폐이기도 하다. 이는 해당 화폐의 발행국이 다른 국가들보다 무역 거래품을 더 싼 가격에 거래할 수 있게 한다. 다른 국가들은 자국의 화폐를 거래해야 하므로 다른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행국들은 더 나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돕는다.

예를 들어, 1900년에, 미국 달러와 파운드화는 각각 전 세계 준비금의 0%와 62%를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2020년으로 빠르게 돌아가면, 현재 파운드는 전 세계 통화 보유량의 4.7%에 불과한 반면, 미 달러는 거의 60%에 달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120년에 걸쳐 퍼져 있는 총 준비금의 일부로써 매년 외환보유고의 변화를 살펴보겠습니다.

Currency 1900 1920 1940 1960 1980 2000 2020
U.S. Dollar 0.0% 28.4% 27.9% 61.7% 57.9% 71.2% 59.0%
Euro 0.0% 0.0% 0.0% 0.0% 17.5% 18.5% 21.2%
Deutsche mark 14.7% 4.2% 0.0% 0.0% 12.9% 0.0% 0.0%
Japanese yen 0.0% 0.0% 0.0% 0.0% 3.9% 5.8% 6.0%
Pound sterling 62.0% 57.3% 68.9% 35.1% 2.4% 2.7% 4.7%
Chinese renminbi 0.0% 0.0% 0.0% 0.0% 0.0% 0.0% 2.3%
French franc 17.5% 6.2% 2.1% 1.3% 1.0% 0.0% 0.0%
Canadian dollar 0.0% 0.0% 0.0% 0.0% 0.0% 0.0% 2.1%
Australian dollar 0.0% 0.0% 0.0% 0.0% 0.0% 0.0% 1.8%
Swiss franc 0.0% 0.0% 0.8% 0.3% 2.2% 0.3% 0.2%
Dutch guilder 0.0% 3.9% 0.3% 0.1% 0.9% 0.0% 0.0%
Other 5.7% 0.0% 0.0% 1.6% 1.3% 1.5% 2.7%

120년 동안 어떻게 준비통화가 발전하였는가?

준비 통화는 중앙 은행과 같은 통화 당국이 "예비"에 보유하고 있는 많은 양의 통화입니다.

통화는 무엇보다도 투자와 거래를 준비하기 위해 비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치가 20조 달러에 육박하는 우리의 방대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은 항상 많은 통화가 예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매일 5조 달러로 추정되는 화폐가 맞바꾸어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외환보유액이 유지되는 몇 가지 이유입니다.

  • 원화 환율안정
  • 위기 때 유동성을 보장
  • 리스크를 줄이고 신용등급을 개선할 수 있는 중앙은행 포트폴리오를 다양화

모든 것이 동등하게, 국가들은 각자의 통화에 대한 더 큰 수요로부터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습니다.

준비 통화의 흥망성쇠

일부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경제학자들은 장기적으로 통화의 수요가 한 나라의 경제적 관련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가 크고 강력할수록 네트워크 효과는 더 크고, 세계 경제와 더 많이 연동됩니다. 따라서, 그들의 통화를 비축해 두려는 더 큰 수요가 있습니다.

A Primer On Reserve Currencies

For nearly a century, the U.S. dollar has served as the world's premier reserve currency, but the future is uncertain.

지난 120년간의 외환보유고 자료는 이 주장에 대한 일부 지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의 효과가 느껴지기 직전인 1990년대 초에 세계 GDP에서 상대적인 점유율을 기준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후, 준비 통화로서의 최고점은 1990년에 9.4%로 거의 같은 지평선이었습니다.

잃어버린 20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잃어버린 20년(일본어: 失われた20年 우시나와레타 니주넨[*])은 일본에서 거품 경제 붕괴 이후 1990년부터 약 20년 이상 경제가 침체한 시간을 말한다. "헤이세이(헤이세이 시대) 대불황"이라고도

미국의 지배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력으로 인해, 달러는 경제학자들이 국제 거래 통화(Vehicle currency)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많은 비달러 경제국들이 여전히 달러를 사용하는 국제 거래에 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더 작고 덜 통용되는 통화들은 종종 어떤 사업이나 무역 거래를 진행하기 전에 미국 달러로 전환됩니다. 아시아 경제가 주변국들을 최고 무역 파트너로 두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그린백을 선택 통화로 삼아 이러한 거래의 상당 부분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다음은 미 달러화의 강세와 힘을 더욱 잘 보여주는 몇 가지 사실들입니다.

  • 65개국 이상이 미 달러화에 자국 통화를 고정하고 있습니다.
  • 미국 5개 영토와 에콰도르, 파나마 등 주권국가는 공식 환전통화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전체 포렉스 거래의 약 90%는 미국 달러와 관련이 있습니다.

Countries That Use The U.S. Dollar

Here are the territories and countries that use the U.S. dollar as their official or quasi official currency.

게다가, 달러는 종종 극도로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안식처로 여겨집니다.(=안전자산) 세계 준비통화라는 위상을 감안할 때 위험 부담이 적고 다른 통화에 비해 경제적 충격을 더 크게 견딜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달러에 도전하는 도전자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미국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세계의 준비 통화로서 영국을 대체했습니다. 오늘날, 미국 경제는 GDP 성장을 기반으로 둔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치고 EU의 최고 무역 파트너로 등극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중국이 명목상 2030년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이전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새로운 글로벌 준비통화가 등장할 수 있을까요?

FX마진거래란 무엇인가

FX거래란? Foreign Exchange의 줄임 말로 외환거래의 한 종류이며 줄여서 Forex라고도 부릅니다(한국에서는 FX마진거래로 불림). FX거래를 포함해 현물환, 선물환, 통화선물 등으로 구분되는 외환거래는 두 나라의 통화를 동시에 교환하는 방식으로 한 나라의 통화를 팔고 다른 나라의 통화를 사는 거래 행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으로 여행을 갈 때 자국의 화폐를 여행국가의 화폐로 환전하는 행위, 그리고 국가간의 경제교류 과정에서 거래대금을 결제하기 위해 자국화폐와 외국화폐를 교환하는 행위를 모두 외환거래라고 합니다.

외환거래는 각 국의 중앙은행뿐만 아니라 무역거래, 자본거래 그리고 수익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거대 시장 참가자들에 의해 형성되므로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모든 투자상품 중에서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입니다. 전 세계 외환시장의 일 평균 거래량은 약 5조3450억 달러[자료출처:국제결제은행(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BIS), 2013년 9월]로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시장입니다.

외환시장에서 총 거래자의 5% 정도는 정부와 다국적 기업 등 자국통화의 안정을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위해 개입하거나 기업 차원의 위험관리를 위해 참여하는 경우이며, 95%는 수익거래 즉, 환율의 변화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리는 시장 참여자들에 의해 형성됩니다.

외환시장은 고정 환율제에서 1973년 미국을 시작으로 주요 나라들이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서 급속한 거래량의 증가와 함께 발전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컴퓨터, 인터넷,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적인 진보로 인해 국제은행, 기업 기관 등 대규모 거래자들에게만 제한되었던 시장이 소액 개인 투자자들도 실시간 거래에 참여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하면서 더욱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해설] 홍콩달러 페그제는 무엇인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홍콩달러 페그(연동)제를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에 따른 대응 조치다. 홍콩달러 환율을 달러 당 7.8홍콩달러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안팎으로 고정시키는 페그제가 불안정해지면 국제 금융허브로서의 홍콩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홍콩 정부는 홍콩달러 가치를 달러 당 7.75-7.85홍콩달러 내에서 움직이도록 조절하고 있다. 홍콩 금융관리국(HKMA)은 이 범위를 유지하기 위해 통화를 계속 샀다 팔았다 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HKMA는 올들어 1060억홍콩달러(약 137억달러)를 시장에 팔았다.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 홍콩의 기준금리도 미국을 따라간다. 통화의 흐름은 각국의 이자율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HKMA는 감독 기능과 함께 통화정책 결정 등의 중앙은행 역할도 한다. HKMA는 달러가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미국보다 기준금리를 소폭 높게 유지한다.

페그제를 시행하면 환율 불확실성이 사라져 교역과 자본 이동이 활성화된다. 이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시장에 적절히 대응해야 하며, 관리에 실패하면 외환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미국은 홍콩 페그제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홍콩 은행들의 달러 구매에 한도를 씌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달러는 HSBC, 중국은행, 스탠더드차터드 등 시중은행이 발권한다. 이 은행들이 홍콩달러를 발행하려면 발행 규모에 상응하는 달러를 HKMA에 내야 한다.

미국이 이 은행들의 달러 구매량을 제한하면 발권력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페그제 자체도 흔들릴 수 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와 홍콩달러의 유통량을 적절히 유지하는 것이 페그제를 유지하는 핵심 조건이기 때문이다.

달러 유통에 인위적인 제한을 두는 것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위상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홍콩은 5월말 기준 4424억달러에 달하는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유사시엔 인민은행과의 통화 스왑을 통해 3조달러가 넘는 중국의 외환보유액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홍콩 정부의 주장이다.

중국 정부는 본토의 자본 유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그 대신 홍콩을 글로벌 자금의 통로로 활용해 왔다. 중국 기업들은 홍콩 증시에 상장해 글로벌 자금을 유치하고 있다. 중국 국유기업을 뜻하는 ‘레드칩’ 173곳부터 민간 인터넷기업 텐센트까지 1200여 개 중국 기업이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 건수 가운데 73%가 홍콩증시에 몰려 있다. 또 지난해 중국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회사채 총 1659억달러 가운데 33%가 홍콩에서 발행됐다.

금융정보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에서 상장을 통해 조달한 642억달러(약 80조원) 가운데 홍콩증시 상장이 55%인 350억달러에 달했다. 상하이와 선전 증시를 합한 197억달러의 1.5배에 달한다.

이같은 글로벌 금융허브의 지위도 홍콩달러 페그제가 무너지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강현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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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오늘날 한자어로 화폐 또는 통화라 한다. money는 화폐로 번역하고 currency는 통화로 번역하는 것이 보통이다. 화폐는 형태와 상관없이 돈처럼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통화는 원래 지급 수단으로 사용되는 주화(鑄貨, coin)나 은행권을 지칭하는 말로 협의의 돈을 지칭하였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은행권과 주화를 합한 것을 통상 화폐 발행고라고 하고 민간 보유 현금과 요구불 예금을 합한 것을 통화라고 정의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통화는 광의의 돈이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화폐나 통화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돈을 한자로 천화(泉貨)나 전(錢)이라 하였다. 전은 오늘날 한자 사전에 돈으로 나오지만, 조선시대 이전에는 중량을 가지는 돈, 곧 금속 화폐(metallic money)를 의미하였다. 천화는 그것뿐만 아니라 직물 등 비금속 상품 화폐도 포괄하였다. 전의 가장 좁은 의미는 동전(銅錢)이어서, 동전을 전화·전폐, 은으로 된 돈을 은화(銀貨)라 하였다. 때에 따라서는 은전(銀錢)이란 말도 사용하므로 전의 더 넓은 의미는 금속 화폐이다. 화(貨)나 폐(幣)도 돈을 지칭하는 말이나, 전화·전폐·은화·저폐(楮幣)·저화 등처럼 화폐 소재를 앞에 표시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저폐·저화란 닥나무로 만든 지폐이다.

돈, 곧 화폐란 무엇인가? 화폐의 정의는 기능과 결부되어 있다. 첫째, 화폐는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것이 화폐의 가장 근본적인 기능이다. 그래서 화폐란 재화나 용역을 교역하는 데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불 수단이라고 정의된다. 둘째, 화폐는 지급 수단으로 기능한다. 화폐로 거래를 종결하기 때문에 화폐는 채무의 최종적인 결제 수단으로 기능한다. 셋째, 회계의 단위 내지 가치의 척도로 기능한다. 넷째,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도 기능한다. 금속 화폐부터는 대개 이 기능들을 모두 수행하지만, 금속 화폐가 보급되기 전에는 일부 기능만 수행하는 화폐가 드물지 않았다. 예들 들면, 조선 초 저화 유통이 실패한 후에도 그것은 가치 척도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노비 매매 문서 등에 나타났다.

화폐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실로 다종다양하다. 그것은 대체로 ‘비금속 상품 화폐(물품 화폐라고도 한다) → 금속 화폐(칭량 화폐 → 주조 화폐) → 불환 화폐(태환 은행권 → 불환 은행권) → 전자 화폐’라는 변천 과정을 거치고 있다. 곡물, 직물 등과 같은 초기 화폐는 교환의 매개 수단이기 이전에 자체로 사용 가치를 가진 상품 화폐(commodity money)이다. 최초의 화폐는 비금속 상품 화폐였으나, 금속 화폐에 비해 불편한 점이 여러 가지였다. 첫째, 내구성이 약하여 저장하기 불편하다. 둘째, 이질적이어서 가치 척도로서 약점을 가진다. 셋째, 분할·휴대에 불편하여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서도 약점을 가진다. 거래 규모가 커지고 원격지(遠隔地) 거래가 성장할수록, 비금속 화폐의 불편이 더욱 커져 결국 금속 화폐가 요청되었다. 최초의 금속 화폐는 무게를 달아 교환하는 칭량(稱量) 화폐였다. 이것은 무게를 달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정부가 일정한 규격의 화폐를 주조하였다. 중량이나 단위를 규격화하여 주조한 금속 화폐를 금속 주조 화폐, 줄여서 주화(鑄貨)라고 한다. 여기서 중량을 줄인 정도나 마모된 정도가 심하면 액면 가치와 소재 가치가 분리되어 이런 주조 화폐는 더 이상 칭량 화폐 또는 상품 화폐가 될 수 없다.

액면 가치와 소재 가치가 일치하는 상품 화폐가 퇴조하면서, 소재 가치와 상관없이 액면 가치가 법이나 관습으로 통용이 보장된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불환 화폐(fiat money)가 등장하였다. 불환 화폐 중에 법으로 통용력이 보장된 것이 법화(legal tender)이다. 주화든 지폐든 액면 가치가 소재 가치로부터 분리되면 불환 화폐가 될 수 있다. 대표적인 불환 화폐는 지폐이다. 10,000원권의 소재 가치는 10원도 못 미칠 것이다. 은행이 발전하면서 은행에 지급을 청구할 수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있는 지폐인 은행권(note)이 등장하였다. 초기의 은행권은 태환이 보장된 상품 화폐였다. 중앙은행이 은행권의 태환을 정지한 이후에는 그것이 불환 화폐의 중심이었다. 불환 화폐는 정부든 은행이든 누구도 상품으로 교환해 주지 않은 화폐로, 액면 가치는 소재 가치가 아니라 발행 주체의 권위와 신뢰에 의해 유지된다.

신용 경제가 성장하면서 어음이나 수표가 화폐를 대신하여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어음이나 수표는 은행의 결제 전까지는 채무로 남아 있어서 최종적인 지급 수단이 아니나 교환의 매개 수단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신용 화폐(credit money)라고도 한다. 수표나 어음이 전자 통신 기술의 발전에 수반하여 카드나 전자 이체로 대체되어 감에 따라, 예금의 현금 역할은 증대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전자 화폐(electronic money)는 카드에 이체된 일정 금액이 지출에 따라 줄어드는 선불 카드로서 기존의 은행권이나 주화를 대신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화폐의 변천 과정은 대체적인 추세로서, 이 도식에 맞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는 주화로 만든 동전이 널리 유통되다가 송·원대에 지폐가 등장하였고, 명대부터 지폐가 소멸하자 은화라는 칭량 화폐가 중심을 이루었다.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은화가 제한된 영역이나마 장기간 통용되었고 원 간섭기에 지폐가 제한적으로 유통되었으나, 고려 말에 소멸되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지폐·동전의 통용 정책이 실패하였다. 전근대에 지폐의 활발한 유통을 경험한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중국 지 폐가 어느 정도 유통된 나라도 원 간섭기의 고려뿐으로 보인다. 당시의 지폐는 정부가 발행한 것이었고, 은행권이 아니어서 태환되지도 않았다. 전근대에는 칭량 화폐와 주화인 금속 화폐가 널리 사용되고 발전하였다.

전근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화폐가 경합하는 일이 많았다. 고려시대에는 쌀, 삼베, 모시, 은화, 지폐 등 특히 다양한 화폐가 경합하였다. 가장 고액 거래에는 은화, 가장 소액 거래에는 쌀이 주로 이용되었다. 15세기 전반에 무명이 널리 보급되면서, 물품 화폐의 주종은 삼베에서 무명으로 바뀌었다. 17세기에는 은화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무명이 주종 화폐의 자리를 내어 주고, 1678년부터 동전이 보급되면서 은화를 압도하여 갔다. 이리하여 직물 화폐인 포화(布貨)가 주종을 이룬 비금속 상품 화폐 시대는 17세기에 금속 화폐 시대로 전환하였다. 동전이 널리 보급된 후에도 쌀·무명은 동전의 보조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화폐 기능을 계속 수행하였다. 이 책의 제1장에서는 비금속 화폐 시대를, 제2장에서는 금속 화폐 시대를 다룬다.

일반적으로 한국 근대의 기점을 근대 세계에 문호를 개방한 1876년의 강화도 조약으로 잡는다. 강화도 조약 이후부터 식민지화되기까지는 제3장에서 다룬다. 이 시기에는 당오전과 백동화가 남발되었고 멕시코·일본의 은화, 일본의 은행권 등이 들어와 활발히 유통되었다. 한국 정부는 1894년 은본위 화폐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은화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였다. 이후 금본위 화폐 제도의 도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 진출한 제일은행이 1902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은행권을 발행하였으나, 한국인은 그 수수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 은행권은 1905년 화폐 정리 사업으로 법화로 지정되었다. 1909년에 한국의 중앙은행으로 설립된 한국은행(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이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권을 처음 발행한 것은 주권이 탈취된 직후였다. 조선은행권은 발행되던 1910년 말부터 통화량의 과반을 차지하였고, 1915년부터 80%를 넘어섰다. 일제 강점기에 화폐의 중심은 주화에서 지폐로 바뀌었다. 백동화는 화폐 정리 사업을 통해 폐기되었고, 엽 전을 제외한 구화폐의 통용은 1920년 말까지만 허용되었고, 엽전도 1930년부터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의 화폐는 제4장에서 살펴본다.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돈이라고 하면 지폐(은행권)와 주화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은행 이용이 일상화된 시대라면 현금 통화는 여기에다 예금 통화(요구불 예금+저축성 예금)까지 포함하여 생각해야 한다. 개항 후 은행의 출현과 더불어 당좌 예금이 등장함에 따라 당좌 수표가 이용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금융 기관이 증가함에 따라, 유력 상공업자들에 의한 예금 통화의 이용이 늘었으나 그것이 일반인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당시 예금 통화는 당좌 예금을 말하며 저축성 예금을 포함하지 않았다. 광복 후 1948년 은행이 발행한 당좌 수표, 이른바 자기앞 수표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고액 거래에 사용되었다. 어음 및 수표와 같은 신용 화폐의 이용도 계속 증가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온라인 시대가 열리면서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전자 이체가 확대되고 은행 예금을 기반으로 하여 신용 카드, 직불 카드 등을 이용하는 결제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예금 통화가 현금 통화를 압도하게 되었다. 1990년대 디지털화의 진전과 더불어 다양한 카드가 도입되면서 전자 화폐 시대가 열렸다. 오늘날 거래에는 은행권이나 주화 같은 현금보다 수표나 카드가 널리 사용되고 은행이 그 거래 내역에 따라 결제하므로, 결제 수단이 다양화되고 현금 결제도 줄어들었다. 광복 후 화폐 경제의 성숙은 제5장에서 다룬다.

사회주의 북한의 주민에게 화폐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는 제6장에서 고찰한다. 사회주의 이념은 화폐·자본의 숭배를 비판하므로, 사회주의혁명 후 소련은 화폐를 폐지하려고 했으나, 적어도 경제 계산 단위로서의 화폐 기능까지 도외시할 수 없어서 단념하였다. 사회주의에서는 시장의 영역이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화폐의 기능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데, 북한에서의 화폐 유통은 다른 사회주의국가들보다도 더욱 제한되었다. 북한에서도 생산재는 무현금 거래, 소비재는 현금 거래라는 사회주의 원칙을 유지했지만, 다른 사회주의국가들과 달리 식량을 비롯한 일부 생필품의 배급제를 장기간 유지해 왔기 때문에 화폐 유통은 그만큼 제한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와 경제난이 심화되어 국가가 더 이상 생산재와 식량을 정상적으로 공급해 주지 못하자, 기업과 주민들은 시장에서 생산재와 식량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그 결과 화폐의 기능은 대폭 확대되었다.

조선 후기 주화인 상평통보 1개=닢(葉)은 1푼(文)이고, 10푼이 1전(錢), 10전이 1냥(兩)이었다. 냥과 전은 조선뿐만 아니라 한자 문화권 전체에서 금속 화폐를 헤아리는 단위였다. 이러한 화폐 단위는 무게 단위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무게 단위는 10푼이 1전(3.75g), 10전이 1냥, 16냥이 1근(斤)이었다. 상평통보 한 개의 무게는 원료인 동의 시세에 따라 4.5∼9.4g에 걸쳐 있었다. 1894년에 조선 정부가 은본위제를 도입하면서 중국에서 쓰던 멕시코 은화의 단위인 원(元)을 차용하여 신식 화폐 5냥을 1원으로 헤아렸다. 1905년 식민지 권력에 의한 화폐 정리 사업에서 은본위 구화폐 10냥(2원)은 금본위 신화폐 1원(圜)으로 교환되었는데, 원은 일본의 화폐 단위인 원(圓, 약자로 円)과 가치를 같이 하였다. 어느 1원도 100전이다. 한국은행이 한일 병합 직후 발행한 화폐의 단위도 원(圜)이었으나, 그 명칭을 바꾼 조선은행이 1911년부터 발행한 화폐의 단위는 원(圓)이었다. 일본인은 ‘圓’을 ‘엔’으로 읽으나, 조선인은 한자 발음 그대로 ‘원’으로 말하고 썼다. 북한 정부는 1947년부터 수차례 화폐 개혁을 하였으나, 화폐 단위를 바꾸지는 않았다. 남한 정부는 1953년에 100(圓)=1환(圜)으로 화폐 단위를 변경하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을 단행하였으며, 1962년에 화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고 명목 단위를 10분의 1로 다시 절하하였다. ‘圜’의 음이 바뀌었으며, 남한에서 1962년부터 사용하는 화폐 단위인 원은 한자 표기를 가지지 않는다. 1894년 갑오개혁과 1905년 화폐 정리 사업을 과도기로 하여 ‘냥’ 체제가 ‘원’ 체제로 전환하였던 것이다.

한국사에서 외국 화폐의 유통은 어떠한가? 고구려 성립기까지 서북 지방에서는 중국의 금속 화폐가 꽤 유통되었다. 고려시대에 송나라 화폐가 상 당량 유입되었으나 화폐로서 활발히 기능하지는 않았다. 원 간섭기에는 원나라 지폐가 제한적으로 유통되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은화가 대량 유입되었고, 그 후부터 18세기 초까지 일본 은화가 많이 들어왔다. 금속 화폐 시대가 개막된 17세기는 외부에서 유입된 은화가 화폐의 주역이었다. 그러다 조선 정부가 제조한 상평통보는 17세기 말부터 은화를 압도하였고, 18세기 중엽 일본 은화의 유입은 두절되었다. 개항 후 외국 화폐는 개항장을 중심으로 유통되기 시작하였고 가치가 안정되고 송금에 편리한 이점에 힘입어 1890년대 후반에는 내륙의 대도시에도 활발히 통용되었다. 조선 정부는 화폐 주권을 수호하려는 의식을 가졌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화폐 정리 사업으로 한국은 일본 화폐권에 편입되고 말았다.

광복으로 미군정의 통치를 받게 된 남한은 엔화권으로부터 분리되어 달러권에 편입되었다. 미군정은 1945년 10월에 1달러=15원(현재 원화로는 0.15원)이라는 환율을 처음으로 정하였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국 돈의 가치는 달러에 비해 8만분의 1 이하로 하락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처음으로 경상 수지 흑자국이 될 때까지 한국은 만성적으로 외화 부족에 시달렸다. 외환 부족 시대의 상징이 암달러상이었다. 외환 사정이 나아지고 외환 자유화가 진전됨에 따라, 한국인도 외화를 넉넉히 가지고 자유롭게 여행하고 해외에 투자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돈은 경제의 혈맥이라 할 수 있다. 돈이 적절히 공급되어야 경제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거꾸로 경제 성장은 돈 이용의 활성화와 화폐 경제의 성숙을 요청한다. 1876년 개항 이전 한국 경제는 심한 기복을 가지면서 완만히 성장하는 데에 그쳤는데, 그 때문에 화폐 경제도 더디게 성장하였다. 뒤집어 보면 화폐 경제의 후퇴 또는 더딘 성장이 경제 전반의 완만한 성장을 낳은 한 요인이기도 하였다. 1860년경 동전량은 1,400만 냥 내외이고, 그것은 쌀 생산량의 13%인 200만 석 정도를 살 수 있고, 자급분을 포함한 국내 총생산의 3% 정도로 추정된다. 개항 후 국내외 통화량이 급증하여 그 총량은 1904년경 일본 돈으로 2500만 엔으로 정도였다. 그것으로 쌀을 560만 석 정도 구입할 수 있었다. 화폐 경제의 가장 괄목할 발전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났고, 그러한 급격한 발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금융 자산 소득이 1980년에 국민 총소득의 세 배를, 1998년에 여섯 배를 넘게 되었다.

금속 화폐, 특히 동전이 통용되면서 일상생활에서 돈의 위력은 커져 갔다. 그래서 19세기 중엽 방랑 시인 김삿갓은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나 돈이 바로 항우장사지”라고 읊조렸다. 도덕주의가 강한 조선의 위정자들은 상평통보가 발행된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 동전을 없앨 방안을 강구하였다. 그러나 돈 없이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민생의 안정이 손상될 것을 자각하면서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이 배금 사상을 비판하여 왔지만, 1990년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며 계획 체제가 와해되는 가운데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통화량의 증가가 실물 경제나 금융 경제의 성장보다 빠르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18세기 중·후반과 19세기 전반에는 동전량이 안정적으로 증가하여 물가가 안정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한국사에서 최초로 장기간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였는데, 그 요인 가운데 한 가지로는 당백전·당오전·백동화처럼 소재 가치보다 명목 가치가 훨씬 높은 화폐의 남발을 들 수 있다. 광복 직전부터 6·25 전쟁에 이르는 동안에는 극심한 정치·경제적 혼란의 와중에 격심한 통화 남발로 한국 역사상 유례 없는 인플레이션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통화 남발과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은 박정희 집권기에도 지속되었다. 1980년 외채 위기를 계기로 세계적인 물가 안정 추세 가운데 물가 안정책이 강력히 추진됨에 따라, 긴 인플레이션 시대가 마감되었다.

외환에서 거래되는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통화는 무엇입니까?

지난 7월 19일 韓中日 3국의 학계 인사, IMF 서울 사무소장, 국내 여당 국회의원 등이 모여 한중일 3국 간 환율 협력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세미나의 큰 주제는 동아시아 국가의 환율 협력이나 이 날 논의된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사항은 소위 ACU (Asian Currency Unit)라고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불리는 동아시아 공동화폐의 창설이었다.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바람직한 외환보유고 운용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부족한 외환보유고가 문제였으나, 2004년에는 외환시장 개입과 수출호조로 인해 국내 외환보유고 규모는 급속히 늘어나 2004년 12월 기준으로 1,980억 달러에 달했으며, 2005년 7월에는 2,049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외환보유고 증가 추세는 중국과 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며, IMF 자료에 따르면 한중일 3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고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전 세계 외환 보유액의 약 6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외환 보유고 증가는 외환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도 외환보유고에 있어서 상당 부분이 달러표시 자산인 미국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각국 외환 보유 자산의 가치는 달러 가치 변화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또한 급변하는 달러 가치는 수출 가격 경쟁력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달러 기축 통화와 관련한 리스크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주요 지역 경제권에서의 독자적 단일 화폐의 필요성은 그 동안 여러 차례 논의된 바 있다. 2004년 訪韓했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먼델 (Robert Mundell)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 안정은 환리스크를 줄여주고 역내에서의 수출과 투자를 증대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먼델 교수는 엔화를 달러에 페그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를 엔화에 연동시킴으로써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을 달러에 연계하여 환율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강도 높은 환율 공조 체제를 주장하는 먼델교수 조차도 아시아에서의 유로화와 같은 단일 화폐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적·문화적 이질성이 유럽보다 강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한편, 2001년 미국경제학회 세미나에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케네스 로고프 (Kenneth Rogoff)는 단일화폐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논의하였다. 먼델 교수는 단일화폐는 바람직하나 아시아 국가들이 실현하기 어렵다고 한 반면, 로고프 교수의 논문은 단일화폐에 대한 기본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먼델 교수가 단일화폐의 대안으로 주장한 달러 연동 환율 시스템 역시 2005년 들어 실현된 위안화의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아시아 각국의 거시경제정책 조율의 현실적 어려움 등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로고프 교수는 특정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단일화폐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들을 밝혔다. 물론 이러한 조건들은 소위 최적통화이론에서 이미 논의된 대로 가격 및 임금신축성, 금융시장의 통합, 생산요소의 통합, 실물시장의 통합을 포함하고 있다1). 로고프 교수는 기존 경제학 이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단일화폐를 위한 전제조건이 얼마나 실행하기 어려우며, 만약 그것들을 실행할 경우 단일화폐가 갖는 의미는 무언지에 대해서 논하였다. 무엇보다 단일 통화의 가장 큰 경제적인 목적은 서로 다른 국가 간의 무역, 자본 거래 상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단일화폐의 전제조건인 국가 간의 실물, 자본 시장의 통합에 의해 단일 경제가 실현된다면, 국가 간 무역이나 자본거래에 따른 리스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단일화폐의 전제조건이 만족되면서 자동적으로 단일화폐를 실행할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 되고 만다. 바로 이 부분이 단일화폐의 역설 (paradox)이라고 할 수 있다.

로고프 교수는 논문에서 소위 ‘수우프와 마술 손톱’이란 우화를 인용하여 단일화폐의 역설을 설명했다. 추운 어느 겨울날 한 걸인이 어떤 농부에게 자신을 하룻밤 묵게 해주면 손톱만을 이용하여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우프를 끓여주겠다고 했다. 일단 수우프를 끊인 걸인은 지금도 맛있지만 양념을 조금만 넣으면 완벽하겠다면서 농부에게 양념을 요구했다. 걸인은 그런 식으로 결국 닭고기와 온갖 양념을 다 집어넣고는 마지막에 자신의 손톱으로 수우프를 저었고 그 수우프는 정말로 맛있게 끓여졌다. 로고프 교수는 유로화는 바로 마술의 손톱과도 같다고 했다. 진짜 수우프를 맛있게 만든 것은 그 손톱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경제통합 과정에서 전기 플러그 크기에서 금융기관 감독 및 규제 시스템까지 통일하였다. 바로 이 모든 통합 노력이 바로 수우프를 진정으로 맛있게 한 양념, 즉 국가 간 실물과 자본 거래의 리스크를 줄인 진짜 요인이라고 로고프 교수는 지적했다. 유럽은 유로가 출범하기 전에 이미 경제만 놓고 보면 단일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통합을 이루었으며, 따라서 이미 국가 간 무역이나 자본거래에 따른 리스크는 상당부분 제거된 상황이었다. 유로화는 이 같은 상황에서 출범했다고 로고프 교수는 지적했다.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유럽 국가들이 굳이 유로화를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2) 중에서 상징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고 본다. 즉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달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유럽 국가들만의 독립된 공동화폐를 가짐으로써 유럽 경제권이 미국에 예속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라고 본다. 유로화 출범을 위해 유럽은 따로 경제통합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경제를 통합하고 나서 달러화에 대응하는 상징적 의미로서의 기축통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유로화라는 단일 화폐를 사용함에 따라 다른 화폐 사이의 거래에 따른 비용 절감 등이나 금융자산의 공통 표시 단위를 사용하는데서 오는 이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득은 로고프의 지적대로 단일 화폐를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비용, 즉 단일 화폐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은행 내지 유사기구 운용 등의 비용과 상쇄될 수 있다.

우리는 단일화폐와 경제통합 중 어느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의 무역이나 자본거래에서 오는 위험을 가급적 축소하는 것이다. 단일 화폐가 외환에서 거래되는 통화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목적을 이룩해 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기꺼이 단일 화폐 출범에 필요한 경제통합이라는 준비작업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준비작업으로서의 경제통합 자체가 국가간 무역이나 자본거래에서 오는 위험부담을 제거한다면 우리가 굳이 추가로 단일화폐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 있다. 만일 상징적 의미에서 아시아 경제권의 공동 화폐가 필요하지 않다면 말이다.

설령 상징적인 이유를 포함한 그 어떤 이유로 아시아에서 단일통화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먼델이 지적한 대로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아시아 국가들은 단일통화를 갖기 위한 경제통합과정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실물시장 통합의 한 부분인 FTA 조차도 지연 중인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선은 아시아 국가 간 무역장벽 등의 거래비용을 줄이고 달러 위주의 외환보유고를 다각화하여 달러 가치 급변에 따른 리스크를 축소하는 것이 좀 더 실현 가능한 목표일 것이다. 또한 한중일 3국은 이 시점에서 단일화폐를 논의하기보다는 상대방 국가가 안정된 금융시장을 가질 수 있도록 협조하고 자국 거시경제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자국 금융시장을 개방함으로써 자본시장 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실물·금융 부문에 걸친 시장통합 작업이야말로 국가 간 거래에 따른 리스크를 그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 김세원(2004),「EU 경제학」, p.363 참조
2) 유로화 출범으로 인한 이점은「EU 경제학」(김세원, 2004)에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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